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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및 소개/📜 파피루스 얘기

UC 버클리 대학교 파피루스 방문 연구

by 성서학 대학원생 2024. 8. 14.

UC버클리 대학교에 있는 Center for Tebtunis Papy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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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Tebt. Suppl. 01,138으로 불리는 파피루스. 기원후 2세기 경 쓰인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대학원, 특히 인문계나 사회과학계라면 교수 한명한명이 학생에게 있어서 귀중한 자원이다. 무슨 얘기냐면 열심히 교수를 괴롭히면 쓸만한 정보와 자료가 내 손에 떨어진다는 거.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다는 학생을 마다하는 교수는 없다. 

 

이번에 여름에 나는 연구조교도 하고 버클리에 파피루스 센터도 다녀왔다. 둘다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버클리 파피루스 센터에 온건 여기저기 들쑤시다보니 얻게된 기회였고, 연구조교는 교수님과 친하게 지내다보니 얻은 기회였다. 첫학기에 시리아어 수업을 들었던게 이어져서 시리아 기독교와 후기고대(Late Antiquity) 전문가이신 교수님이랑 연구조교로 이어졌다. 

 

파피루스 센터는 정말 열심히 여기저기 들쑤셨다. 나는 초기 기독교 기원후 1-2세기의 사회적인 배경에 관심이 많다. 이를 보통 사회사(Social History)라고 부르는데, 이 공부를 하려면 신약성경 외에도 그리스로마 문헌, 파피루스 자료, 고고학적 자료 등을 참고해야 한다. 그래서 파피루스 읽는 훈련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러 교수님들에게 질문하고 다녔다. 그 결과 로마역사 전문가 교수님이 우리학교에 계시다는 걸 알게 됐고, 비록 밴더빌트에는 파피루스가 없지만 버클리에 자기 친구가 북미 최대 파피루스 장서량을 자랑하는 센터를 운영하는 교수니까 버클리의 CTP, 텝투니스 파피루스 센터로 가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대학원에 여름 연구 장학금 신청해서 약간의 여행비용을 받고 왔다. 

 

파피루스 자료라는 건 수업 한번 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파피루스를 읽는 훈련이라는건 실제로 파피루스를 눈으로 보아야 가능하다. 시대가 많이 발전해서 온라인으로 양질의 파피루스 자료를 읽을 수 있지만, 첫발을 딛는 훈련부터 절대 혼자서 배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들을 열심히 들쑤시고 다녔다. 

  1. 처음에는 고전 그리스어 수업 교수님께 여쭤봤다. 몇가지 프로그램을 알려 주셨는데, 전부 박사내지 주니어 교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2. 학교에 로마역사 및 파피루스 전문가가 있으니 그 교수와 얘기해보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3. 이제 로마역사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워낙 바쁜분이셔서 작년 11월에 메일을 보냈는데 3달 뒤에 올해 2월에나 미팅을 가졌다.
  4. 미팅을 하면 1대1 Reading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드리려 했다. 문제는 이 교수님이 24년 가을부터 1년간 안식년에 들어 가신다는 거.
  5. 고민 끝에 교수님은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센터에 가보라고 하셨는데, 펀딩은 내가 찾아야 했다.
  6. 그래서 신학대학원에 또 들쑤시고 다니니 여름 연구지원 프로그램이 있는걸 알게되서 연구지원금 프로포절을 제출하고 장학금을 따냈다.
  7. 교수님 친구가 운영하는 센터는 UC버클리에 있는 텝투니스 파피루스 센터(Center for Tebtunis Papyri). 약 3만개의 파피루스를 보유하고 있는 북미 최대량이다. 여기 포닥 선생님과 이메일을 나누며 시간을 조율했다.
  8. 오기전까지 로마역사 전문 교수님이랑 2-3주에 한번 정도 만나면서 기초적인 지식을 좀 배웠다.

이 모든게 가능했던건 사실 교수님들이 친절했기 때문이다. 중간에 한다리라도 어느 교수가 불친절하게 나왔다면 못왔다. 헬라어 교수,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센터에 계신 친구 교수에게 연락해준 로마 역사 교수님, 프로포절 쓰는 동안 도와준 센터 포닥 선생님, 프로포절 추천서 써준 지도교수님, 그리고 센터에 계신 교수님. 누구라도 거절하거나 뜨듯미지근하게 나왔으면 올 수 없었다. 내가 물어보고 들쑤시고 다닌 일은 모두 교수님들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특히 로마역사 교수님은 전혀 할 필요도 없고, 본인 계획에도 없었던 1-2시간 가량의 1대1 세션을 2-3주에 한번씩이나 가지게 해주셨고, 직접 소개도 해줬다. 

로마역사 교수님은 파피루스 전문가지만 파피루스가 단 한장도 없는 밴더빌트에 계시고, 본인 학생 중에서도 파피루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내가 물어보는 거에 약간 신난다는 듯이 반응했다. 유학을 가게 된다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걸 추천한다. 자기 전공 분야 공부를 하고 싶다는 학생을 마다하는 교수는 없다. 

연구했던 파피루스는 P. Tebt. Suppl 01,138로 불린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기 때문에 Suppl라는 약어가 붙는다. 20세기 초반, 19세기 후반에 Grenfell & Hunt라는 두 명의 옥스포드 대학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이들은 파피루스 발굴 듀오로서 옥시링쿠스라는 또다른 거대한 컬렉션의 파피루스 자료를 발굴하고 편집한 바가 있다. 내가 방문한 버클리 센터에 존재하는 파피루스는 Tebtunis라는 지역으로서 옥시링쿠스보다는 양이 적지만 대략 3만종이 되는 파피루스 조각들이 현존하고 있다. 이 파피루스의 경우 20세기 초반에 발굴되고 지금까지 편집되지 않은 채로 학교에 보존되었다.

이 파피루스는 대출 계약서로서 계약 당사자들간에 땅을 담보로 잡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대출 계약서는 나름대로 정해진 형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정해진 형식만 알 수 있다면 재구성하는 것이 꼭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다. 

보통 로마시대의 계약서들은 나름대로 날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이 파피루스도 Sebastos 23일이라는 꽤 구체적인 날짜를 담고 있는데 문제는 연도 부분이 상실되었다. 다만 예상 가능한건 기원후 2세기 전반기 문헌으로 보인다는 것. 근거는 내용상 언급되는 인물들이나 기타 등등의 내용을 기반으로 알 수 있다. 날짜가 안 보인다면 언급되는 인물로 유추할 수 있는 지 판단한 뒤에, 딱히 분명한 근거가 없다면 마지막 판단은 글씨체로 한다. 시대에 따라 나름대로의 글씨체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 

파피루스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은 대략 다음의 순서로 진행된다. 

 

  1. 파피루스에서 확실히 알아 볼 수 있는 글자를 먼저 확인한다.
  2. 알아 볼 수 있는 글자들 앞뒤로 있는 글자는 단어나 내용을 따라서 나름 유추한다.
  3. 계약서와 같이 확실한 형식이 있는 내용은 다른 문서와 대조하여 같은 단어가 나오는지 확인한다.
  4. 계약서도 이름이라던가 장소라던가 약간 다른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한두가지 문서가 아니라 계약서에 해당하는 많은 문서들을 확인할 수록 좋다.

그리고 이 4가지 단계를 무한반복한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요즘 시대에는 Papyri.info라는 웹사이트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한다. 현존하는 그리스로 파피루스 중에 이미 편집되어 출간된 것은 모두 데이터베이스에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단어도 계속해서 검색해가면서 대조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일일히 다 읽어보면서 서로 대조해야 했으니 그때 사람들은 그리스어 실력이 보통 좋은게 아니었을듯 하다. 지금은 지나간 선배들이 쌓아놓은 데이터 위에서 재구성하기 때문에 나같은 초짜도 2주 안에 거의 대부분을 재구성할 수 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기간의 훈련이 가능했던건 사실 나의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다. 양질의 훈련은 결국 교수님들과 여러 사람들이 친절했기 때문이다. 훈련 과정 중간에 어느 한다리라도 교수님들 중 하나라도 불친절하게 나왔다면 할 수 없었다. 그리스어 교수님,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센터에 계신 친구 교수에게 연락해준 로마 역사 교수님, 프로포절 추천서 써준 지도교수님, 프로포절 쓰는 동안과 훈련 내내 옆에 붙어서 지도해준 센터 포닥 선생님,  그리고 센터에 계신 교수님. 누구라도 거절하거나 뜨듯미지근하게 나왔으면 올 수 없었다. 내가 물어보고 들쑤시고 다닌 일은 모두 교수님들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특히 로마역사 교수님은 전혀 할 필요도 없고, 본인 계획에도 없었던 1-2시간 가량의 1대1 세션을 2-3주에 한번씩이나 가지게 해주셨고, 직접 소개도 해줬다. 포닥 선생님도 나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도와줬는지 모른다. 방문자들 도와주는게 그 사람의 일이지만 이정도면 거의 추가급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정도로 열심히 도와줬다. 

로마역사 교수님은 파피루스 전문가지만 파피루스가 단 한장도 없는 밴더빌트에 계시고, 본인 학생 중에서도 파피루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내가 물어보는 거에 약간 신난다는 듯이 반응했다. 결론적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걸 추천한다. 자기 전공 분야 공부를 하고 싶다는 학생을 마다하는 교수는 없다. 다들 성심성의껏 도와줘서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