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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 전부터 바울학계에서는 급진적 새관점 내지 유대교 안의 바울이라는 학문적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 진영에 속한 학자들은 생각보다 서로의 의견과 문제의식, 방법론과 질문의 출발점이 아주 다를 때가 많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바울이 여전히 유대교 안에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도서출판 학영에서 출간된 바울: 이교도의 사도(2022)의 저자 파울라 프레드릭슨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 외에도 마크 나노스, 매튜 티센, 매튜 노벤슨 등이 있다. 이 책은 유대교 안의 바울 학자들이 모여 로마서를 다시 이해해보고자 하는 노력 가운데 탄생했다. 만약 유대교 안의 바울이라는 개념에 대해 귀로 들어보았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이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2003년 출간된 Thorsteinsson의 논문인 Paul's Interlocutor in Romans 2에서부터 출발한다. 서론에서 매튜 티센이 자신이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시절에 Thorsteinsson을 발견했다고 얘기하면서 출간한지 꽤 되었는데 아무도 이 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의아하게 여겼다고 말한다. 이 책은 Thorsteinsson의 책으로부터 출발하여 로마서를 다시 새롭게 읽는데 동의한 9명의 학자들이 자신만의 '유대교 안의 바울' 관점으로 로마서 독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Thorsteinsson의 결론은 무엇일까? 로마서 2:17에서는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을 기점으로 바울은 상대방에 대해서 도둑질하고 간음하는 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전통적으로는 바울이 문제삼는 이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는 새관점 학파에 속한 제임스 던도 마찬가지다. 제임스 던 역시 이 본문을 두고 바울이 유대인을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로마서 1:18-32을 그냥 읽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에 대해서 얘기하는 듯이 보이는데, 결정적으로 1:27이 그렇다. 근데 막상 롬 2:17-29에 다다르면 17절에서 유대인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단락을 읽어가면서 문법적으로 접근하다보면 롬 1:18-32, 2:1-5, 2:17-29에서 바울이 모두 동일한 인물을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또 다른 시각에서 관찰하다보면 막상 1:18-32에서는 이방인으로 보였던 사람이 2:17-29에서는 유대인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에 대한 기존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해결책은 간단하게 롬 1:18-32이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전적타락을 나타내며, 2:1-5과 2:17-29은 같은 인물을 대화상대자로 삼고 있는것으로 보이기에 2:17의 표현을 따라서 유대인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제임스 던도 따라가는 해석이다. 두번째 해결책은 롬 1:18-32과 2:1-5이 이방인을 비롯한 일반적인 인류를 뜻하며, 전적타락을 표현하고 있다고 여기고, 롬 2:17-29은 전혀 다르게 유대인으로 대화상대자가 바뀌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두가지 해결책 모두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번째 해결책의 문제는 편지를 거꾸로 읽어야 한다는 데 있다. 즉 롬 1:18-32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대화상대가 유대인을 포함한다는 결론을 짓기 위해서는 롬 2:17-29까지 읽은 뒤 거꾸로 앞으로 넘어가면서 대조해보아야 한다. 두번째 해결책의 문제는 문맥의 표현을 보았을 때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데 있다. 직관적으로도 롬 2:1-5과 2:17-29에서 바울이 비판하는 사람은 동일한 인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세번째 해결책을 Thorsteinsson이 자신의 2003년 작에서 제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Thorsteinsson은 바울이 의도한 대화상대자들은 이방인이지만 유대적인 성향을 가진 유대주의자들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결론이 앞선 기존의 해석의 난점을 해결해주고, 이외에도 나타나는 꽤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1) 문맥적으로 2:1-5과 2:17-29은 동일한 인물로 보이고, 유대인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울이 주로 이방인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즉, 로마서의 독자가 이방인이나 유대인 둘 중 하나라는 이분법적 선택에서 벗어난다. 또한 로마서가 이방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2) 로마서에 나타나는 반유대적이라고 생각했던 표현들이 사실 로마공동체 안에 있는 꽤 작은, 특정한 무리의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며, 모든 유대인에 대해 바울이 부정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즉, 롬 2장의 유대적인 것에 대한 비판들이 보편적인 신학적 결론이 아니게 되면서 반유대주의, 안티-세미티즘의 망령에서 벗어난다.
Thorsteinsson의 주장은 수사학 및 그리스로마적 편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텍스트를 읽는 독자에 대한 심층연구로부터 기반한다. 그 중에서도 그가 많은 부분 의지하는 것은 '저자가 의도한 독자'에 대한 개념이다. 바울이 '의도한 독자들'이 오로지 유대인이거나, 오로지 이방인일 필요가 없다. 로마서의 표현에 따르면 바울은 자신의 독자들이 유대적인 지식과 관습을 알고 있을것이라고 상정한 것은 맞다. 하지만 유대적인 지식과 관습을 가진 사람이 꼭 유대인이라는 법은 없다. '바울이 의도한 독자'으로 논점을 바꾸면 실제로 로마공동체 가운데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해결 불가능한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 상정한 독자는 당연히 이방인이지만 편지의 내용을 볼 때 그는 유대적인 지식과 관습을 흠모하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바울은 이전에도 갈라디아서에서 이러한 사람들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Thorsteinsson의 이러한 주장은 로마서 16장에서 언급되는 문안인사에 대한 한가지 전제조건을 깔고 들어간다. 많은 학자들은 로마서 16장에 나오는 다양한 이름들을 근거로 로마공동체에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Thorsteinsson은 그러한 학자들의 결론은 1인칭 문안인사와 2인칭 문안인사을 구분짓지 못하는 성급한 결론이라고 말한다. 즉 편지를 처음 읽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분명히 바울이 1인칭으로 인사하지만 그 외에 2인칭으로 문안인사를 부탁하는 이들, 즉 유대인 예수따름이들이 바울의 편지를 처음으로 읽는 사람들 가운데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의도했던 독자들은 상당히 좁은 층의 독자들이었다는 것으로 결론내릴 수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지긴 한다.
이를 크리스티안 베커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마서는 유대주의를 신봉하는 이방인들을 비판하기 위한 상황에 contingent/특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이 Thorsteinsson의 결론이다. 이에 따라서 롬 1:18-32부터 2:17-29까지의 표현들이 유대인을 향한 비판이 아니고, 바울은 반유대적인 사람이 아니며 그가 문제 삼는 것은 이방인들이 유대적인 관습을 따르게 만드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유대교 안의 바울 진영의 학자들이 꽤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대목이다. 약간의 색채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유대교 안의 바울' 진영의 학자들은 바울이 유대교의 종교 관습을 문제삼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신도 계속해서 관습을 지켰음을 관찰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관습대로 살아가도 무방하다고 바울이 생각했을 것으로 여긴다. 한편 이방인들의 문제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침례/세례를 받고 영을 받고 부활 가운데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서 해결된다는 것 바울 사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좀 길었지만 여기까지가 Thorsteinsson의 주장이고, 매튜 티센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이 여기에 동의하며 자신만의 로마서 독법을 내놓았다. 책의 결론부는 좀 특이하게도 조슈아 지프가 썼다. 완전히 유대교 안의 바울 학자는 아닌 한편 충분히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상대로 학계에 있는 지프는 꽤 인상적인 비평을 한다. Thorsteinsson을 비롯한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하는 한편, 몇가지 고찰할 점에 대해서 남기는데, 이건 다음에 다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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