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알렌 포웰, 사도행전신학, CLC, 2000.
Powell, Mark Allan. What Are They Saying About Acts? New York: Paulist Press, 1991.
Paulist Press는 90년대부터 What are They Saying About? 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내고 있다. 감사하게도 CLC에서 이 시리즈를 다년간 번역하여 내주고 있다. 흔히 CLC의 번역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일단 시리즈의 대부분의 책을 번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할만하다.
한두해 전부터 성경공부를 시작할 때면 주석을 먼저 참고하기보다 단행본 위주로 보고 있다. 마크 알란 포웰의 책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개론서로서 훌륭한 책이다. 이전에는 신학교에서도 그렇고 사적으로도 항상 주변에서 주석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식으로 가르쳐왔기 때문에 나도 그냥 그렇게 하곤 했다. 특히 주석서 앞 부분을 참고하면 대부분 개론을 자세히 짚고 넘어가곤 하기 때문에 스스로 정리하는데에도 상당히 유용했다.
하지만 요즘은 포웰의 개론서와 같은 단행본을 위주로 참고하고 있다. 주석을 먼저 참고하던 때에도 스스로 주석가의 입장을 주로 따라간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때 우연히 트위터에서 단행본을 보는게 좋다는 북미 학자(아마도 매튜 티센)의 말을 봤다. 그때부터 홀린듯이 그냥 단행본을 먼저 참고하기 시작했다. 포웰의 저작들은 상당수가 개론서로 이루어져 있고, 많은 경우 번역도 이루어져 있다.
찾아보기 시작하니 포웰과 같은 저자들이 남긴 개론서 수준으로 쓰인 단행본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진처럼 T&T Clark에서는 거의 모든 책마다 이런식으로 된 개론서가 있고, 80-90년대 책들을 보게 되면 좀 더 예전의 논의를 담은 개론서들이 있다.
단행본을 먼저 보고 나면 그 다음부터 목표하는 본문을 원문으로 읽고 번역한다. 단행본을 읽기 전에 번역을 해보았는데 사실상 지도 없이 등산하는 느낌으로 막막했다. 단행본을 읽고나면 어느 정도 수월하게 번역하면서 차례대로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행본만 읽고 해석할 때 좋은점은 원문을 해석할 때 다른 학자의 주석을 꼭 빌리지 않고도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주석을 전혀 안 볼 수 있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나중에 결국 난해구절을 마주칠 때면 정평난 주석을 펴봐야 한다.
사도행전의 경우 Gasque의 해석사, 포웰의 사도행전신학, Shillington의 개론서, Shelly Matthews의 개론서, 이렇게 4가지 책이 가장 유용해보인다. 3권의 개론서는 모두 영어로 200페이지가 안되고, Gasque의 해석사 책만 300페이지가 조금 넘어간다. 해석사 책은 애초에 모두 읽어볼 필요도 없고 뒤에 있는 색인을 잘 참고하면 된다. 포웰 책은 한글로도 이미 2000년에 CLC에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역사비평적인 방법들의 논의를 잘 요약했다.
신학생들에게도 이런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사실 초기에 이렇게 하면 좀 배우는 속도가 더디게 보인다. 주석을 읽는 것이 차라리 한두번 설교 준비하는 데는 좋을지 모르겠다. 근데 특정한 책의 성경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개론서 몇가지를 읽고 시작하게 되면 신학교에서 들었던 신약개론 수업에 더할 수 있는 훌륭한 보충수업 시간이 될 듯하다. 굳이 헬라어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읽을만한 능력을 가질 필요도 없다. 나도 그런 능력이 안 될 뿐더러, 밴더빌트에 오기 전에는 한글을 위주로 읽었다. 그렇지만 신학생이라면 개론서를 읽는 동시에 원어 실력을 어느정도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신대원 기간동안만 열심히 훈련해도 꽤 달라진 주해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크 알란 포웰은 이 시리즈에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부분을 맡아 90년대초에 두 책을 모두 출간했다. 포웰은 훌륭한 사복음서 개론서와 신약개론 책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이 시리즈도 그런면에서 기초를 탄탄히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거의 30년 전에 출간된 개론서가 지금도 유용한 이유는 전통적인 논의들을 훌륭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2020년대에 이른 성서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유럽과 독일이 지배했던 역사비평의 한계를 넘어서서 21세기의 포스트모던 시대에 적절한, 백인서구 중심의 성서해석이 아닌 다양한 성서해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다만 새로운 신학생에게는 이런 트렌드가 너무 벅차다. 기존의 논의도 따라잡지 못한 우리는 일단 90년대까지의 역사비평적인 논의들을 인지하고 넘어가야 한다.
사도행전은 생각보다 논쟁점이 많은 책이다. 사복음서는 서로 비교대조해가며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마가우선설, Q문서 가설, 누가복음의 마태복음 사용설 등의 여러가지 가설이 존재하고, 논쟁점도 존재하지만 어느정도 정설이 존재한다. 리차드 버릿지가 주장했듯이 복음서는 그리스로마 전기와도 가까운 면이 있다. 그에 반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같은 저자가 썼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많은 논의가 혼재되어 있다. 만약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 로마적인 전기라면 사도행전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도행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초반부를 제외하면 중심인물이 베드로와 바울로 수렴되는 것은 어찌 생각해야 하는가? 누가복음-사도행전의 저자는 흔히 알려진 "치료자" 혹은 "의사"로서 바울의 동료였던 누가가 맞는가? 사도행전은 지역의 이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가? 사도행전의 저자는 어떤 자료들을 참고 했는가? 사도행전 속의 바울과 바울서신의 바울이 보여주는 차이는 무엇인가?
포웰의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학계와 학자들의 중심논의를 담고 있다. 신학생들이 주의할 것은 저자가 누구인지, 사도행전의 역사성에 대한 기타등등의 논의에 파묻히지 않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럽 서구중심의 역사비평은 사도행전을 비롯한 신약성경의 역사성에 집중해왔지만 현재는 과연 그러한 독해가 의미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냈는지 회의감이 있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의미있는 독해방법은 사도행전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는지 주의하며 읽는 것이다. 서신서가 고대의 수사학적인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면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내러티브를 통해서 예수와 제자들,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특정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경향을 가진다.
마크 알란 포웰이 설명하는 사도행전의 역사성과 문학성
사도행전의 역사성
📌 복음서도 역사성의 도전을 여러번 받았듯이 사도행전도 다를 것이 없다. 근현대에 이르러 많은 역사학자들이 사도행전의 역사적 진실성에 도전해왔다.
📌 이 진실성이란 다른 문헌들과 비교 대조해보거나, 당시 사회상과 비교해보면서 사도행전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따져보는데 있다. 특히나 많이 비교하는 문헌 중에는 바울서신이 있다. 사도행전은 중반부부터 사실상 바울의 전도여행기라고 보아도 될 만큼 바울의 비중이 높다.
📌 역사적 진실성을 따질 때 학자들이 먼저 검토해보는 요소들이 있다:
1) 사도행전에만 있는 내용,
2) 다른 자료와 비슷하지만 더 자세히 묘사된 내용,
3) 드라마틱하게 마치 연극적(劇的)인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
첫번째 요소의 경우는 바울의 이전의 이름인 사울 같은 요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이 본래 사울로 불렸다는 얘기는 사도행전에만 등장하는 내용이다. 두번째의 경우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보는 환상, 혹은 바나바와의 갈등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서신에서는 어떤식으로 그리스도를 만났는지 묘사하지 않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전체 내러티브의 꽤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바나바와의 갈등도 갈라디아서에서 짧게 언급되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약간 디테일이 몇가지가 추가된다.
📌 어떤 학자들은 고대세계의 역사적 글쓰기라는 장르 자체가 현대 역사가의 상식과는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와 사모사타 루시안과 같은 고대로마의 역사가들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극적인 묘사와 더불어 곁가지는 내버려두고 중요한 줄기를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사도행전이 꼭 그런식으로 되어 있다.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저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요소들의 줄기를 따라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 그렇다면 서신과 내용이 다르다고 해서 사도행전의 역사성이 부인되는 것인가? 꼭 그렇지도 않다. 포웰은 몇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먼저 서신서의 바울과 사도행전의 바울은 단순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는게 아니다. 사도행전의 바울은 서신서보다 좀 더 열려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신서는 대부분 갈등거리가 있을 때 쓰였기 때문에 바울 자신의 표현에는 수사학적인 요소들이 묻어나고 강한 감정이 실리며, 때로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때도 있다. 반면 사도행전은 대부분 그리스도를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때마다 바울은 꽤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린도전서 9:20-21에서 보듯이 바울은 스스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에 알맞는 방법으로, 이방인에게는 그에 맞는 방법으로 대했다고 말한다.
📌 이를 생각하면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다소 열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포웰은 이를 다른 학자들의 표현을 빌려서 "사도행전에만 등장하는 바울의 모습"이라고 명명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서신서의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묘사하는 자기자신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도행전의 바울은 분명 제3자의 시선에서 보아온 바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에는 분명 서신서에서 보기 힘든 바울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이러한 요소가 꼭 비역사적이리라는 법은 없다.
📌 다만 확실한 것은 학자들이 보기에 사도행전의 역사성은 무조건 인정하기도, 무조건 부정하기도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태라는 것.
사도행전의 문학성
사도행전은 명백히 특정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이를 문학적으로 비평하고자 하는 노력이 꽤 있다. 포웰은 이를 두 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1) 수사학적 비평 2) 내러티브 비평
1️⃣ 수사학적 비평
성서학자들은 흔히 고대 수사학적 기법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비평하고는 하는데, 이를 수사학적 비평이라고 한다. 보통 서신서를 해석하고 비평할 때 수사학적 비평을 사용한다. 갈라디아서 수사학 비평으로 잘 알려진 한스디터베츠와 그의 제자이자 자랑스러운 한국의 김선용 박사 역시 갈라디아서 수사학적 비평의 맥락에 있는 주제로 논문을 쓰셨다. 혹은 마가렛 미첼의 고린도서신 수사학적 비평도 있다.
이와 사뭇 다르게 사도행전은 전체적인 그림에서는 수사학적 기법을 사용하기 어렵지만, 연설이나 설교하는 장면에서는 수사학적 비평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꾸준히 있어왔다.
2️⃣ 내러티브 비평
📌 Narrator: 내래이터는 누구와 어떤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 어떤 포커스를 가지고 내레이션을 하는가?
📌 Point of View: 관점에는 내레이터의 관점과 등장인물의 관점이 있다. 사도행전의 특정한 표현이 누구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 등장인물(Character): 사도행전에는 아주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떤 등장인물은 내러티브의 진행에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등장인물들은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등장인물이 단순히 내러티브의 진행에만 역할을 하기보다 입체적인 모습을 지녔다는 말이다.
📌 사건(Event): 사도행전에서 어떤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예를 들면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환상, 베드로와 고넬료의 가족등은 여러번 언급된다. 어떤 사건들은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묘사된 적은 없지만 등장인물의 회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떤때는 비슷하게 보이는 사건이 여러번 반복해서 등장한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 역시 내러티브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가진다.
📌 갈등(Conflict): 사도행전의 갈등은 꼭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간의 갈등이 중심인것처럼 그려진다. 이 갈등이 어느정도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 다만 포웰의 설명으 80년대까지의 연구를 기준으로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80년대의 유대교연구와 지금의 유대교연구 사이에는 아주 큰 간극이 존재한다.
📌 상징주의(Symbolism): 특정한 모티프는 사도행전에서 특정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은퇴한 에모리 대학교의 석좌교수 Luke Timothy Johnson은 누가행전에서 재물과 재산이 하는 문학적 역할에 대해서 박사논문을 썼다. 또 바다를 출항하거나 여행하는 모습 역시 사도행전에서 특정한 역할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
문학으로서 사도행전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성을 부정하는게 아니다. 의미없는 역사적 논의에 회의감을 가진채, 사도행전의 최종적인 형태를 공부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의 최종적인 텍스트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이 내러티브 속에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특정한 사건을 겪는 기승전결이 있다. 이를 통하여서 사도행전의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신학적-문학적 요소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포웰이 얘기하는 문학성 분야다.
개인적으로 이 두 주제를 관심 있게 다룬 것이 90년대 초에 쓴 저작치고는 꽤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Shillington과 Matthews의 저작은 좀 더 요즘 분위기에 맞게 탈식민주의 비평이나 페미니스트 비평과 같은 저작들의 연구 결과도 약간 언급하고 지나간다. 포웰이 설명하는 80년대까지의 문학 비평을 어느정도 숙지해야 수월하게 이후의 탈식민주의 혹은 페미니스트 비평과 같은 지점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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